재밌어서 이틀만에 읽었다.
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더니 어휘가 말랑랑해지는 게 느껴진다.
이 책을 마지막으로, 구비해 둔 정세랑 작가의 책은 모두 읽어버리게 되었다.
학창시절,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쉬워
아끼고 아껴 책을 읽었던 간절함?! 간질간질함을 오랜만에 느껴서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다. :)
아래부터는 밑줄 그어놓은 문구들
1.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, 자주 접했지만 책속에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단어
심상한 얼굴
158페이지 -레이디버그 레이디-
--> 마음이 상한 얼굴
간명한 아우트라인
249페이지 -돌풍 속에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-
--> 간단하고 분명한
2. 신선한 표현이라고 느낀 문구
인표는 속으로 굉장히 놀랐으나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되물었다.
83페이지 -럭키와 혼돈-
은영은 친밀한 구박을 했지만, 혜현의 뒤에 어두운 꼬리가 달린 걸 보고 더 뭐라 하지 않았다.
...
젤리피시가 답지 않게 슬픔으로 너울거리는 게 보기 안쓰러웠다.
101페이지 -원어민 교사 매켄지-
...감미로운 한국 술...
유정만의 유난히 희미한 존재감을 이용해 알아낸 매켄지의 주소였다.
103페이지 -원어민 교사 매켄지-
인표가 보기에 매켄지는 던져져 날아가면서도 좋아하며 웃을 것 같은 인물이었다.
115페이지 -원어민 교사 매켄지-
오리의 수명은 30년에 가깝다. 중간에 크게 다치지 않았더라면 더 살았을지도 모르지만,
어쨌든 34년을 학교의 마스코트로 살았다.
...
언젠가부터 아이들은 오리를 오리 장군이라고 불렀다.
...
후발 동아리들도 오리 마크를 쓰고 싶어했기 때문에 학교에는 현재 다섯 종의 오리 배지가 있다.
141-142페이지 -오리 선생 한아름-
--> 오리가 마스코트로 살았다라는 내용을 오리 배지로 풀어서 설명한 것이
현실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다가와서 좋은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했다.
래디 엄마에게선 두 번 더 전화가 왔다. 그쯤 되니 안은영도 그 집에 편하게 드나들게 되었다.
대저택은 "꺼져."라고 말하는 대신 "왔냐."라고 인사를 해 왔다.
153페이지 -레이디버그 레이디-
안은영은 얼굴 근육에 지시를 내렸다.
최대한 아가씨같이 웃어, 아가씨같이 친밀하게 웃으라고!
155페이지 -레이디버그 레이디-
--> 안은영의 기질을 너무나 잘 나타내는 부분
은영의 눈에는 보였다.
두사람이 만들어 내는 기분 좋은 공기가 시각적으로 보였으니까.
161페이지 -레이디버그 레이디-
궁금한 건 그냥 물어본다는 점에서 애들은 건강했다.
164페이지 -레이디버그 레이디-
신윤복이 그렸을 법한 여자애
215페이지 -전학생 옴-
역사를 조금만 공부하면 사회가 역사적으로 순방향을 향하는지 역방향을 향하는지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었다.
222페이지 -온건 교사 박대흥-
주로 단 과자들을 주고받는 무슨무슨 데이가 오면 은영도 신이 나서 이 교실 저 교실을 드나드는 모습이
약간 꿀벌 같은 데가 있어서 인표를 웃게 했었다.
242페이지 -돌풍 속에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-
--> 귀엽다는 말을 꿀벌의 움직임에 빗대어 풀어 설명해 귀엽다는 단어보다 더 귀엽게 느껴졌다.
그때 인표에게도 기다렸던 순간이 찾아왔다.
하고 싶었던 말이 부스러져 안쪽으로 가라앉지 않고 확신의 총알이 되어 발사되는 순간이 말이다.
271페이지 -돌풍 속에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-
3. 공감이 갔거나 마음에 오래 남았던 문구
해가 갈수록 더 느끼는 점이지만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고르는 것 같다.
사명같은 단어를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수긍하고 받아들였다기보단
수월한 인생을 사는 걸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게 맞겠다.
14-15페이지 - 사랑해 젤리피시 -
--> 직업이 사람을 고르는 것 같다 라는 말에 꽂혀버렸을지도..
이유야 어쨌든 할아버지는 좋은 파수꾼이었고, 인표는 아직 한참 모자라다는 것만이 분명했다.
39페이지 - 사랑해 젤리피시 -
가족들과 친구들이 세계의 단단한 부분을 밟고 살아간다면
자신은 발이 빠지는 가장자리를 걸어야 함을 슬슬 깨달아 가던 중이었다.
45페이지 -토요일의 데이트메이트-
--> 은영이 스스로를 정의내리는 기본값에 대한 좌절감 혹은 체념이 느껴진다.
칫. 어른이 되더니 재미없어졌어.
46페이지 -토요일의 데이트메이트-
언젠가는 소원을 훔치는 쪽이 아니라 비는 쪽이 되고 싶다고, 은영이 차창에 이마를 대고 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.
52페이지 -토요일의 데이트메이트-
--> 여기서도 은영이 자신의 운명(?)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드러난다.
슬그머니 일어서서 결제를 먼저 하고 내뺄 참이었다.
늘 그래왔다. 인표가 그렇게 일어서면 다들 인표를 못 본 척해 준다. 오래 남기 싫어하는 걸 아니까,
남아 봤자 신경질만 낼 걸 아니까, 물주니까,
투명인간처럼 부드럽게 나설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것이다.
109페이지 -원어민 교사 매켄지-
기도 확보하는 법,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, 흉골 압박 심마사지를 가르쳤는데
설령 태반이 까먹고 일부만이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중 한 사람이 언젠가 누군가를 구하게 될지도 몰랐다.
그런 멀고 희미한 가능성을 헤아리는 일을 좋아했다.
멀미를 할 때 먼곳을 바라보면 나아지는 것과 비슷한 셈이었다.
112페이지 -원어민 교사 매켄지-
어떤 나이에는 정말로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데 모두가 그걸 얻지는 못한다.
125페이지 -원어민 교사 매켄지-
아이들은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붕어의 부레를 꺼내다가 영영 생물학도의 꿈을 접었으며,
몇 개의 탱크를 청소하고 난 다음에는 한아름도 후회막심이었다.
덕분에 은근하거나 별로 은근하지 않은 질타를 한참이나 받았고 이후 악취 혹은 살아 있는 생물이 관련된 사건만 터지면 한아름에게 맨 먼저 전화가 왔다.
130페이지 -오리 선생 한아름-
--> 읽자마자 빵 터졌던 부분. 한아름 선생님 왠지 눈이 동글동글할 것 같다.
인표는 '그래서요?' 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. 불편한 사람이다. 아마 불편해서 학생들이 말을 잘 듣는지도 모른다.
불편한 매력이라니 그건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.
133페이지 -오리 선생 한아름-
아름도 선생님인데 늘 저렇게 학생을 부르듯이 까닥까닥 손짓을 해 왔다. 그래도 아름은 웃으면서 그쪽으로 갔다.
불편한 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.
138페이지 -오리 선생 한아름-
"...그럼 어머님은 아버님의 어디에 반하신 거예요?"
"글쎄요, 워낙 무해한 생물이라 나 말고도 아무나 따라와서 잘 살아요. 굳이 떠올리자면 ..... 신발 사이즈가 같아서?"
156페이지 -레이디버그 레이디-
"...패션은 원래 어느 선을 지나면 더 이상 일반적인 아룸다움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니까요."
172페이지 -레이디버그 레이디-
"젊어서 그래."
말하고도 그 말이 좀 웃기게 들렸다.
젊어서 못 다 한 게 많아서 그래, 그런 뜻이었는데 마치 젊어서 혈기왕성해서 그래, 같은 말로 들렸다.
....
은영이 강선 앞에 태블릿 PC를 두고, 그림 그리는 앱을 열어 주었다.
...
강선의 손가락이 화면 위로 미끄러졌다. 산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희미하게 선이 나타나자 기뻐했다.
터치는 죽은 사람에게도 공평했다.
"이게 될 줄이야. 정전기구나, 나."
"마음껏 하다가 가."
181페이지 -가로등 아래 김강선-
장르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. 지우개가 명중하는 순간 은영은 예감했다.
그러므로 지금의 은영은 사실 강선의 설정인 셈이었다.
187페이지 -가로등 아래 김강선-
강선에 대해서는 언제나 규명할 수 없는 감정들만 들었다.
189페이지 -가로등 아래 김강선-
"내가 너 어디가 예쁘다고 말해 준 적 있었던가?"
...
"거기 그만두면 안 돼?"
...
"칙칙해지지 마, 무슨 일이 생겨도."
...
조금만 더 있어, 말하고 싶었지만 은영은 칙칙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.
...
상자를 들고 달려가서 주워 담고 싶다고, 은영은 생각했지만 그러진 않았다.
대신 아주 오랜만에 울었다.
190-193페이지 -가로등 아래 김강선-
"...그냥 어느날 눈뜨면 존재하고 있습니다. 항상 이 근처에서 태어나요. 23.8제곱킬로미터 안에서 늘 태어났습니다...."
203페이지 -전학생 옴-
역시 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. 아무도 구해 주러, 잘 버텼다고 칭찬해 주러 오지 않는다.
그날 저녁 은영은 혜민과 패스트푸드를 먹기로 했다.
205페이지 -전학생 옴-
미워하는 마음에는 늘 죄책감과 자기 검열이 따르지만 매켄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.
210페이지 -전학생 옴-
살아간다는 거 마음이 조급해지는 거구나. 욕심이 나는 거구나.
얼떨떨한 상태에서 오래된 옴잡이의 마음이 점점 어려졌다.
216페이지 -전학생 옴-
192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에 죽을 때까지 큰 오점 없는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판단했었다.
대흥이 생각하기에 20세기는 오점 없이 살기 쉬운 세기가 아니었다.
227페이지 -온건 교사 박대흥-
매주 손을 잡고 걸어도 연인은 아니었다.
은영은 살아 내는 일이 버거워서 먼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며 모든 상황이 임시적이라는 걸 늘 암시했다.
238페이지 -돌풍 속에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-
--> 은영과 인표사이를 아주 적절하게 축약한 한마디가 마지막 챕터에 적혀있다.
은영에게 아주 미약하게나마 모진 의도가 없었다 해도, 머물지 않겠다는 그 표정만으로
지난 몇 년간 인표는 신경통 비슷한 것을 앓아야 했다.
241페이지 -돌풍 속에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-
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추고 사는 삶은 삶의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잊게 해 주었다.
272페이지 -돌풍 속에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-
정말로 빛이 나는 건 아닐 텐데 잠든 은영의 손을 잡아주거나 가볍게 안아 주면 은은하게 발광했다.
인표는 그 사실을 은영에게 말하진 않았다.
그저 충전이 잘 된 날, 완전히 차오른 은영의 얼굴을 바라보다 잠드는 게 좋았다.
그 빛나는 얼굴이 인표의 수면등이었다.
273페이지 -돌풍 속에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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